조글로로고
선률의 금맥을 더듬어 반세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8월2일 09시11분    조회:992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최연숙

点击浏览下一页

작곡생애에 대중들이 익히 알고 즐겨 부르는 가요 한두수만 창작해도 유능한 작곡가로 대중들의 애대를 받게 된다. 그런데 작곡가 최연숙선생(79세)은 반세기 남짓한 작곡생애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타향의 달밤”, “두만강천리”, “진달래고향” 등 중국조선족이라면 누구나 익숙히 알고있는 대표적가요를 비롯한 근 800여수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청춘원무곡》, 《최연숙작곡집》, 《진달래고향》 등 3권의 작곡집을 펴냈으니 가히 천부적재능을 지닌 작곡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5년전, 연변인민출판사 《연변음악》잡지 가사편집을 담당하던 시절, 나는 작곡편집을 맡은 최연숙선생과 1년간 한사무실을 쓰게 되였다. 당시 선생은 고희를 훨씬 넘긴 고령임에도 가요를 창작할 때면 반나절 아무 말도 없이 가사를 곱씹으며 선률착상에 달라붙었는데 다가가 말을 걸어도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깊은 사유의 골짜기에 침잠해있군 하였다. 그런 선생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이 명곡을 창작할수 있는 비결을 깨도하게 되였다.

최연숙선생의 고향은 조선이다. 1944년 이른봄, 최연숙선생은 부모님을 따라 조선 함경남도 함흥을 떠나 중국 안도현 오도양창에 터를 잡았다가 후에 룡정시 로투구에 정착하게 된다.

최연숙선생이 17살 되던 해에 조선전쟁이 발발하였다. 당시 초중 2학년생이던 선생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압록강을 건너 초연이 자욱한 전장으로 달려갔으며 부대 문공단 악대에 편입되여 트롬본을 불었다. 선생은 때로는 전사들의 사기를 진작할수 있는 가요들을 창작하느라 전호속에 엎드려 흙먼지를 들쓰며 필을 놀리기도 했다.

전쟁의 총성이 멎자 최연숙선생은 조직의 배려로 하북성예술학교에 추천받아 음악리론과 여러가지 악기를 체계적으로 배울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였다. 3년간의 피나는 수련을 거쳐 학업성적이 월등했던 선생은 모교에 남아 바이올린, 피아노 등 학과를 가르치는 청년교원으로 되였다.

1958년, 선생은 연변조선족자치주문화처에 전근하고 선후로 룡정현문공단, 연길시예술단 등 단체에서 단장 겸 악대지휘, 연변인민출판사 음악편집 등 여러 직무를 담당하였다.

지난 세기 90년대로부터 최연숙선생은 가요창작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1992년 연변음악가협회는 산수가 좋은 훈춘시 경신진에서 전 주 음악창작강습반을 개최하였다. 당시 리상각시인이 최연숙선생에게 가사 몇편을 주면서 작곡을 부탁하였는데 그중 화룡 토산자중학교 어문교원이 창작한 가사 “타향의 달밤”이 눈길을 끌었다. 인차 작곡을 끝내고 강습반에서 시창하였는데 반응이 좋았다. 후에 김지협가수의 은은하면서도 정서 깊은 목소리로 전파를 타면서 대뜸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20여년에 걸쳐 고향을 떠난 중국조선족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향수가로 자리매김되였다. 그외 선생의 대표작 “두만강천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 가요들은 물의 흐름처럼 자유분방하면서도 곡선적인 음악선률로 가사와 한덩어리로 융해시켜 조선족들의 특유한 미적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한시대를 풍미하는 인기가요로 부상하였다.

최연숙선생은 탁월한 음악적성취로 《중국음악가사전》, 《세계인물사전》, 《중국전문가사전》에 이름을 올렸고 “중국개혁개방문예종신성과상”,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50돐 문예사업 선진일군”, “진달래문예상”, “연변조선족자치주 민족문화사업 특수기여인물” 등 굵직한 영예를 받아안았으며 2010년에 국가우정부는 “중국예술인물시리즈우표”―“최연숙반신상”을 발행하였다.

김인덕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44
  • 현장의 가장 가까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까지 사진 한장에 담아 전해야 하는 직업이 촬영기자이다. 오인철(70세)은 평생을 《연변일보》 촬영기자로 뛰면서 뉴스현장을 누볐고, 자치주의 변화를 고스란히 사진으로 기록하고 방대한 자료를 남겼다. 3일, 오인철은 자택에서 인터뷰를 받으면서 컴퓨터에 일목료연하게 ...
  • 2022-08-14
  • 화가 리명식선생 화가 리명식선생은 자치주창립70돐을 뜻깊게 맞이하기 위해 퇴직후 여러해동안 고향의 정을 담아 30여점의 미술작품들을 알심들여 창작하였다. 그중 ,, 등 12점의 작품이 올해 전국미술계에서 지명도가 높은 북경 인민미술넷(人民美术网)에 발표되였다. 리명식선생은 자신이 태여나서 자란 아름다운 ...
  • 2022-07-24
  • 작은 체구에 늘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지만 바이올린을 잡는 순간 카리스마가 넘친다.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청중의 마음을 휘여잡으며 바이올린 선률에 젖어들게 한다. 바이올린만 손에 잡으면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어디서 뿜어져 나올가? 5살에 처음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했으니 사실상 칠십...
  • 2022-07-21
  • 5월 연길신화서점(2층)에서 “그림으로 위안과 회복의 마음”을 전하는 페델스갤러리 리려평(27세)의 작품전시회가 열리면서 서점을 찾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종합그림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생명의 빛》을 설명하고 있는 그림 작가 리려평(李丽平) 자화상으로 시작한 첫 작품 《시작》 전시장의 첫머리에 놓여...
  • 2022-05-06
  • 조선족구기예술가 김성일 국내외 무대서 명성 떨쳐 ‘귀할수록 값이 간다.’는 말이 있듯이 예술분야에도 희귀한 재주를 갖춘 사람은 어데 가나 환영을 받는다. 입으로 다양한 동물의 소리를 내는 건 물론 입김으로 진동을 일으킬 수 있는 물건이면 모두 악기처럼 불 수 있는 구기(口技)예술인 김성일이 그런 사...
  • 2022-03-11
  • 민족의 얼을 노래하는 작곡가   —박학림의 음악길을 따라서 글 로은화         음악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음악만이 가지고 있는 시너지는 엄청나다. 살아 숨 쉬는 음표로 우리한테 가슴 벅찬 감동과 공명을 선사해주고 문화예술에 목 말라있는 곳을 찾아 수백차의 무료음악공연을 펼친 ...
  • 2022-01-07
  • 중국 조선족상모춤을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린 주역 —중국 조선족농악무(상모춤)의 대표성 전승인 김명춘 로인순     농악무 하면 상모를 떠날 수 없고 상모의 고향 왕청을 떠올리면 김명춘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 중심에 그가 서있다. 중국 조선족상모춤을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린 사람으로...
  • 2022-01-04
  • ‘작은 떼떼’에서 중견예술인으로   리아     김광철 중국 조선족사회에서 ‘떼떼가족’은 한 세대를 주름 잡은 코미디문화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배우들의 본명은 몰라도 예명을 모르면 아쉬울 정도이다. 과거에는 물론 현재에도 복고풍이 불 때마다 등장하는 연변소품에서...
  • 2021-12-31
  •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 헌례 영화작품 《1921》은 7.1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상영된 우리 나라 대형영화작품이다. 이 영화의 음악총괄(统筹)과 음악후기제작을 담당한 이가 바로 90년대생 조선족영화음악인 양경일 (31세)이라는 사실은 저으기 주위의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영화음악 작곡 양경일 “음악총감독을 협조...
  • 2021-11-03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